농촌 태양광 발전시설,
주민 갈등과 제도적 개선 과제
농촌 태양광 발전시설,
주민 갈등과 제도적 개선 과제
농촌 지역에서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주민들과 사업자 간 갈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주민들은 대부분 정보 접근의 어려움과 불충분한 소통을 지적하며 반발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사업이 중단되거나 지연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농촌 공동체와 사업자 모두에게 부담으로 작용하며,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갈등의 근본 원인을 살펴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 방안을 모색해 본다.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와 주민 갈등의 시작
전남 나주시 세지면 대산리 계양마을에는 2021년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시설이 지금까지 가동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다. 주민들이 뒤늦게 송전 선로 설치 계획을 알게 된 후 반발하면서 시설이 사용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록 계양마을 이장은 “처음부터 주민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회가 열리지 않았다”며 “이렇게 사업을 일방적으로 진행하면 반발은 당연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이 사례는 특정 지역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전남 영암군에서도 2020년 미암면 간척농지에 태양광 발전사업 허가가 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임차농들이 큰 혼란을 겪었다. 다행히 사업은 개발행위 ‘불허가 처분’을 받고 무산됐지만, 임차농들은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다. 권혁주 영암군농민회 사무국장은 “마을 이장의 역량에 따라 주민들이 중요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된다”며 “이는 생계가 걸린 임차농들에게 매우 불안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같은 갈등은 대부분 정보의 비대칭에서 시작된다. 주민들은 발전사업의 허가 과정에서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하거나 관련 정보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공청회나 주민 설명회가 형식적으로 이루어져 실질적인 논의가 부족한 경우도 적지 않다.
법적 절차와 현실적 한계
현행법은 주민 의견수렴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전기사업법 시행령’에 따르면, 태양광·풍력·연료전지 발전사업자는 사업 허가를 신청하기 전에 일간신문 등을 통해 사업 내용을 공지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또한, 대규모 개발 사업의 경우 환경영향평가 절차에서 주민 설명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평가서에 반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적 절차에도 불구하고 실제 주민들이 사업 내용을 접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전남 무안군 운남면의 한 농민은 “공사가 시작되고 나서야 태양광 발전시설이 들어설 것을 알게 됐다”며 “세상에 누가 매일 지역 일간신문이나 시청 홈페이지를 꼼꼼히 확인하겠느냐”고 한탄했다. 더 큰 문제는 환경영향평가가 적용되는 사업의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환경영향평가는 발전설비 용량이 100㎿ 이상인 대규모 사업에만 의무적으로 적용된다. 소규모 태양광 발전사업의 경우 주민 의견수렴 과정이 생략되면서 제도의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 ‘농어촌파괴형 풍력·태양광 반대 전남연대회의’의 조사에 따르면, 전남 지역에서 발생한 태양광 발전 관련 민원의 대부분은 100㎿ 미만 사업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났다.
갈등 해결을 위한 제도적 개선 방안
1. 주민 알 권리 보장과 고지 방식의 개선
전문가들은 주민들의 알 권리와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사전 고지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김형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정책팀장은 “현재의 공지 방식은 변화한 미디어 소비 환경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충남 당진시와 경남 김해시의 사례를 언급하며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갈등유발 예상시설 사전고지 조례’를 통해 주민들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알림을 제공하고 있다”며 “이러한 방식을 확대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2. 주민 설명회 시기 조정과 실질적 논의 확대
현재 태양광 시설 개발은 ‘입지 선정 → 발전사업 허가 → 개발행위 허가 → 공사계획 신고·착공’ 순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주민 설명회는 환경영향평가가 포함된 개발행위 허가 단계에서야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사업이 상당 부분 진행된 뒤여서 주민 의견수렴이 형식적 절차에 그치기 쉽다. 조공장 한국환경연구원 지속가능전략연구본부장은 “입지가 확정된 이후에는 사업 추진이 기정사실화되어 실질적인 협의가 어렵다”며 “입지 선정 단계에서부터 주민과의 협의를 시작하고, 논의 범위를 환경 영향뿐만 아니라 이익 공유 방식, 주민 삶의 질 등 포괄적인 문제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3. 지자체의 중재자 역할 확대
지자체가 갈등 해결의 중재자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재 재생에너지 사업 설명회는 대부분 사업자가 주관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일방적인 설명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일본 등 일부 국가에서는 지자체가 설명회를 주관하며 중립적 조정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조 본부장은 “지자체·주민·사업자·전문가가 함께하는 민관 협의체를 구성해 사업의 타당성을 심도 있게 논의하는 것이 주민 수용성을 확보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협의체는 주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사업자와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하며 갈등을 예방할 수 있다.
주민 수용성 확보를 위한 이익 공유 모델 도입
재생에너지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주민 수용성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이익 공유 모델을 도입하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주민들이 발전시설로 인해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발전소 수익의 일부를 지역 사회에 환원하거나, 주민들이 지분을 소유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이 있다. 이러한 모델은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이미 성공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독일의 경우, 태양광 및 풍력 발전 사업에서 지역 주민이 지분을 소유하거나 수익의 일부를 지역 공동체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줄이고 있다. 농촌 지역에서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단순히 주민과 사업자 간의 소통 부족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다. 이는 정보 비대칭, 법적 절차의 사각지대, 주민 참여 부족 등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얽혀 있다. 따라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민 알 권리 보장, 제도적 개선, 지자체의 적극적 중재 역할, 이익 공유 모델 도입 등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이 뒷받침될 때 재생에너지 사업은 지역 사회와 조화롭게 공존하며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